오래 전 홍콩에서, 잊었던 믿음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며 뜨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던 초신자

로서, 쉽지 않았던 해외 단기선교도 다녀 오면서 교회를 더 알게 되었고 한 발자국 뒤에서 교회를 바라보며 느꼈던 느낌을 써 내려갔던 글 입니다.

                                                                                                   

뜨거웠던 마음으로 다녀왔던 해외 단기선교후 담임 목사로서의 경험이 별로 없었던 목회자의 착각과 그 원인을 제공했던 일부 성도들의 편 가르기 등으로 교회가 시끄러워 지면서 내편, 네편하는 성도들의 행태에 실망하며 "나 자신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이러함이 말로만 듣던 교회의 속성인가? " 라는 나 혼자만의 의문 때문에 믿음에 대한 큰 갈등을 느꼈던 때 이었습니다.


나중된 믿음에 대한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그 답답함에 교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 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교회에 대한 무엇을 판단하고자 적어 내려갔던 글은 아닙니다.

그저 당시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된 묵은 초신자로서 교회에 대한 본인의 답답함을 써 내려간, 다시 새롭게 교회 생활을 시작한 묵은 초신자의 간증문 쯤으로 여겨 주시면 됩니다.                                                                                                   

이 글 또한 File을 정리 하면서 그때의 교회의 갈등을 생각하면서 그냥 지워 버리기가 아쉬워 본 교회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올려 봅니다.                                                                

본문중에 전에 섬기던 교회에 관련된 일부 내용은 편집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문맥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 글의 내용은 헨더슨주사랑장로교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



                                                           

이 보시게,   장로님 그리고 장로님 !


오랫만 일세, 격조했네.                                                                                                     

자네들과 소식들이 격조했던 사이에  나는 신변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네.  

자네들은 아직도 시무장로로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있겠지만 나는 작년 말에 조용히 長노를 은퇴했네. 

꼭 은퇴식을 해야 한다는 우리 교회 집사, 집사의 강권에 조촐하게 사람이 모여 교회가 아닌 식당 에서,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사업을 시작 하리라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조금 늦었다고  축하 해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내 앞날의 장도를 축하하는 축하식을 겸한 은퇴식(?) 하였네.                                                                                            

무슨 長노 은퇴식을 교회가 아닌 식당에서 하였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내가 섬기던 교회 에서 모르는 조용한 은퇴식 이었네.


참으로 세상살이에서 힘든 직책이 長노라고  주어진 세상의 직책 이더구만...,                                         

조금 아쉽다면 長노라는 직책의 정확한 본분이 애매한, 그나마 아직도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 들이 나에게, 쉬고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기에, 대답하기가 궁색해서 요즈음 장노 직분을 받아 지금은 그 직분에 충실하고 있다고 둘러 대었었네.

어떤 사람은 축하를 해 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교회의 장노냐고 묻기에 교회와는 관계없다고 하고 말을 돌려 버리니 의아해 하기도 하였지만 그 사람의 혼란스러움 까지 내가 풀어줄 이유는 없었네.

그런데  그 장노라는 직분은 그냥 내가 만들어 직책 이었기에 교회와는 관계없는 이었네.


이 보시게, 장로님들 !


내가 겪어보니 長노 선택 되는 것은 순간이고 , 은퇴하기는 참으로 어렵더구만...,  

그런데 요즈음 교회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져 입장이 곤란하다 싶으면 쉽게도 던지더라고, 귀중한 長老라는 직분과 그에 따른 본분을 말일세.


이 보시게, 오랜 친구지만 참으로 내가 존경하는 장로님, 장로님,


정신차리고 다시 돌아온 탕자처럼 묵은 초신자가 장노 운운하니 의아 하시겠지만 오해하시지 말게.                                                            

서두에 언급 하였듯이 그런 질문을 받는것도 싫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는 더욱 싫어서, 요즈음 교회도 섬기고 있고 주위를 보니 사업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한번 웃어 보자고 말장난으로 급조한 세상의 직책이었네.


期的으로 하는일 없이 는 사람 그렇게 조합해 보았네 , 줄여서 長노라고… 

長노에서 은퇴 했다는 말은, 제대로 표현하자면 이제 다시 새로운 사업 시작 했다는 말이네.    

무도 감사한 아닌가?   나이에 ...  

이 모든 것이, 많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자네들 덕분 이네.


이 보시게, 장로님 !  

                                                                                                                                                    

지금도 생각이 나네.  2004년도 인가?                                                                                              

국 Rhode Island Providence에서 대학을 다니던 아이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아이들 데리고 필라델피아의 자네 집을 방문 하였을 자네와 부인 성희씨의 밝고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 아름다운 자네 동네와 어찌 그리 어우러지는지...

그때  자네가 교회의 장로인 것을 생각해 내고 이렇게 물은 기억이 있네.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 믿으면 자네 얼굴 같이 그리 편안해 지냐고....


당시 우리 내외는, 사람 믿는 나의 판단 잘못으로 인해서,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일구어 놓은 회사를 어쩔 없이 동업을 하였다가, 작정하고 접근한 노회한 동업자로 부터 오히려 경영권을 빼앗기는 황당한 일을 당하면서, 뒷감당 하느라 무척 힘든 시기 이었었네.

한편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모의 갑작스러운 어려움으로 인하여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없이 공부 하는 아이들한테 까지 부모로서 힘든 모습 보이기 싫고, 어려움 속 에서도 힘든 내색없이  여러모로 부족한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눈물 지을 이었지.                                                                                                                                     


그리고 눈물이 폭포수로 변한 것은 졸업식날 아들놈의 한마디, “ 아빠, 엄마 이렇게  학교를 졸업 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 어느 부모가 이런 자식의 고맙다는 말에 무너지지 않을 있겠는가?

그리고, 홍콩에서 묵묵히 뒷수습 하느라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조금 안정이 될만하면 사업 확장하느라 저지르는, 그런 나에 대한 원망도 많고 꼴도 보기 싫을 터이지만, 오히려 나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던 아내에게 슬금슬금 눈치 보며 무지 미안해 하던 시절 이었던 같네.


그런   아내에게 장로님, 자네는 미자 회장님이라 높여주며 은근히 내 속을 긁었었지.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아내에게 쥐어 살기 시작 했던 같으이.                          

사나운(?) 고향 후배들도 앞에서는 조심스러워 하던,  내가 보기 싫을 하는 아내의 표현대로 더러운(?) 성질머리 이었는데 말일세.                                                                    

한편으로는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에게 쥐어 살아 간들 뭐가 어떠냐!’ 하며 작정하니 마음이 그리 편해 지더구만


미국으로 대학을 보내기로 결정을 미국 여러 대학의 합격 통지에도 시큰둥 하던 아이 그리도 원했던 대학의  합격 소식에, 당시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상황에 어찌 가까스로 입학을 시키고 아이 혼자서만  미국에 가야 상황에, 저질러 놓은 수습하느라 같이 가지 못하는 아빠가 오히려 걱정 되는지 홍콩 공항에서" 아빠, 걱정, 혼자서도 잘할 있어! " 하며 씩씩하게 가방 둘러매고 홀로 떠나는, 이제 홍콩 에서 Secondary School을 졸업한 아직 어린 우리 집안 맏상주의 뒷모습에, 돌아 오는 무척 마음이 아팠었네.     


그리고 우리 내외, 입학식에도 가보지 못한 채  Rhode Island 의   아이 학교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졸업식에  갔다가 아이들 데리고 자네의 초대로 필라델피아 자네 집에 들렀었지

지금 생각하니 그때 장로님, 자네와 성희씨의 얼굴에서 누군가를 느꼈던 같네.               

홍콩으로 돌아 오는 , 자네와 성희씨의 얼굴을 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었네.


당시우리 내외는 어머님의 당부에 따라 절에 나가고 있었네.                                  

시집온 아내에게 절에는 다녀야 된다고 엄명을 하시어 홍콩에 와서도 한국 절에 다니고 있었네

그러다 보니 나는 아직 젊은 나이에 홍콩한인불교신도회 부회장도 하고...                                             

아마 그때 자네를 만나고 홍콩에 돌아 오면서 은연중 마음속에 교회를 품었던 같네.


그리고... ,


이 보시게, 장로님,  

                                                                          

내 아내가 당시 한창 바쁘게 홍콩에서 여러 곳의 가게들을 운영하느라 가끔씩 잊고 지나치는 생일을 그것도 음력생일을! 오늘 아침 미역국 먹었냐? “라고  국제전화를 통해서 기억해 주던 장로님

당시 장로님도 편안한 시절이 아니었을 인데도 ...
어느때부터 인가 생일 이면  전화가  터인데 안오지?’ 하면서 기다리던 아내의 바램에 틀림없이 자네의 생일 축하 전화가 오고..., 그러다 보니 아예 생일은 신경도 쓰지 않더군,  믿는 구석이 있어서...


당시 자네는 삼성전자의 이사로서 초창기 삼성 중국본사 설립 임원으로 근무 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승승장구 타의로  북경 생활을 접고  국내로 들어와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감사로 갔을 우리 친구들, 많이 아쉬워 하였네.                                                         

상심했을 자네 생각에 가끔씩 전화를 보면 장로님, 자네는 그냥 웃으면서 출근해서 매일 신문이나 보며 편하게 지낸다고만 하였었네.


"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자네를 보면서 이런 구절도 생각할 이었던가 보네.


훗날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 하였을   미국에서 장로님으로 부터 받은 느낌, 그리고   장로님의 힘든 시기에 보여준 의연함, 이런 모습들이 오버랩 되면서 교회에 대해서 더욱 깊게 생각 하게 되었는가 보네.

당시 현실에 힘들어 할때  자네를 한국 출장 만나면 쐬주 한잔하며 서로의 살아가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자네가 웃으며 한말이 기억이 나네.                                                 

 “ ! 교 한번 댕겨봐."  

                                                                          

오랫동안 잊었던 교회를 자네들 때문에 은연중 마음에 품었던 같네.               

그러던 우연히 미국의 장로와 서울 출장이 겹치게 되어 서울 체재 중에 장로와 같이 최 교수 만나게 되었었지.

내가 서울에 자주 출장을 온다는 얘기는 친구들 편에 들었는데 연락도 없이 가버리곤 했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걸렸으니 저녁에 한잔 해야 한다는 최 교수 강권에, 친구 좋아하고 좋은 친구와 한잔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내가 따라 최 교수 한잔 하자는 권유에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지...완곡하게 거절을 하였더니 그러면 다음날 조찬이라도 해야 한다고 해서 장로와 같이 조찬을 하기로 하였지.

후에  생각해 보니 이것도, 교회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었나 싶네.


다음날  조찬 서로의  안부 인사 끝에 시작된 하나님 이야기가 친구 사이에 끊이지가 않더구만....  

오랜만에 만나 서로 궁금했던 소식들도 많았을 인데…...

최 교수가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원장 후보로 올랐던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선출 선거시의, 지금 생각하면 최 교수의 간증 이었던 같네.                                               

장로와 교수, 사람이 어쩌면 그리 하나님 얘기에 죽이 맞던지...

나에게는   흥미가 없는 대화들 이다 보니 일이 없어 과식을 버렸네.                                 

그날따라 Inter Continental Hotel  아침 뷔페가 먹을 것이 그리 많던지....                     

사람의 진지함에 결국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최 교수가 진지 했던 같았네.   

친구들의 대화를 듣다가 최 교수의 하나님에 대한 진지함이 이해(?) 가지 않아 질문을 했던 같네.


최 교수, 너도 교회 같은디 댕기냐? ".                                                          

그려, 나 교회 다니는 몰랐냐?  나는 집사고 아내는 권사여. 성가대도 한다. "


이 보시게, 장로님!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  최고라는 서울대학교의  행정대학원장에, 누구나 인정하는 하바드대학의  박사에, 이런 친구가 무엇이 아쉬워 교회를 다니는지...,                                                    

내가 이렇게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 무지하고, 하나님께 겁이 없었네.

교회를  나가지 않는 나에게 자네들이 가끔씩 언급했던 교회 얘기들이 마음속에는 이미 무겁게 들어 왔었던 같았네.                                                               

아마  자네들이 나를 전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교회로 인도를 하려고 하였더라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성격에 오히려 반감으로 교회에 대한 생각 조차도 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장로님과 지금은 장로가 되었을 교수에게 감사하네.  

한편으로는  그때 자네들의,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닐 수밖에 없는 나를 전도 하고자 했던 고마운 마음과 기도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하는 생각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느껴 지네.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


세 장로님들 덕에 교회에 나가며 시간을 찾은 같네.                           

세상살이의 억울함과 자책, 그리고 울분에 이루던 잃어버린 많은 시간들... ,
자네들이 찾아 주었었네.

지난 시간들, 참으로 내려 놓기 어려웠었네.                                                 

너무혼란스럽고 그냥 내려 놓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억울함을 내가 감당 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려웠었네.


우리 한국산 식품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훗날을 기대하며 한국식품의 불모지 이었던 홍콩의 식품 시장에  신라면, 종가집김치 앞세우고,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 시장 개척을 하고   어쩔 없이 동업을 하면서 일어난 너무 황당한 일들, 분한 마음에 이루고, 겨우 잠들었나 싶으면 벌떡 깨어 그냥 날밤을 지새운 지가10이네.                                                                 

어떻게 잊을 있었겠나?


 그때 하나님께서 자네들을 통해서 따뜻하신 손을 내밀며 잡아 주셨던 같네.         

그렇지만 자네들의 인도로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쉽게 내려 놓을 수가 없었네.
교회에 나가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에 대한 다짐이, 교회말로 내려놓음 이었던 같네.           

그려  잊어 버리자, 용서하자 부족함 때문이니...”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려 놓자니 너무 억울하고, 마음에 지니고 있자니 너무 힘들고 무겁고,  아무리해도 세상 쪽에 가까운 마음을 온전히 내려 놓을 수가 없었네.


그때  우리 내외가 교회에 나온 것을 무척 반겨주던 전에 우리 직원 이었던 어느 집사님이 어느 예배 조용히 아내 손에 쥐어준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음이란 , 아직 친하지도 않은 하나님은 어떻게 나의 갈등을 아시고 사랑을 이렇게 표현해 주시는지, 고마운 이시더구만... .


좋은, 읽고 읽었네. 읽은 같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책들은 번씩 읽어도 지겹지가 않고 읽을수록 이해가 되면서 새로운 느낌이 새록새록 드는지...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이리 저리 생각해 보니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바뀌더구만   

그래도 10 이상 가슴에 묻어둔 사람에 대한 증오와 억울한 마음은 쉽게 지울 수가 없었네.

그러던  어느 , 마음속의 증오를 없는 내가 섬기는 교회 제자반 2기 동기인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같은 분이 지으신 '더 내려놓음이란 책을 주시더군.                          

하나님, 재미있으신 분이더라고...,                                                   

당신께서  이제는 정신 차리고 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온 묵은 초신자인 나를 아무리 좋고 예쁘게 보려고 해도 아직 많이 부족하니 내려 놓으라는 가르치심 아니겠나?


기도했네.                                                                                   

기도? , 어려운 것이 기도 이더구만 ....                                                       

하다  막히고 막히고 ... . 무슨기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아마 우리 교회 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자들의 주님을 칭송하는 최고의 미사여구와 극존칭들, 시적(?) 표현들, 자꾸 그런 기도 말들이 떠올라 어설픈 기도와 엉켜 버렸던 같네.             

그때 생각에는 기도는 그렇게 하는 인줄 알았고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았네.

대표 기도자들의 기도가 어려워야지 .... ,  아직까지도 무지 어렵게 들리니 말일세.
자네들도 대표 기도를 터인데 대표기도는 쉽고 그저 편안하게 하시게.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보시기에 것이 아닐 바에야 제발 마음속에서 무거운 놈을 지워 주십시오.'                                                                                 

내 생각대로 하다 보니 조금씩 기도가 길어 지더라고 …,                   

기도란  나와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무슨 형식이 필요하느냐고  어느 집사님이 일러 주셨네

걸으면서도, 앉아 있으면서도 ... , 잠깐씩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오더라고 ...           

그러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 지고...                                                         

어렵고 답답할 기도하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네.

그러면서  어느 때부터 인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려 놓아지는 같았네.                  

그래도 아직 내려 놓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오랫동안 가슴을 누르던 무거움을 조금 이라도 내려 놓을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  기도 것이네.                                                                        

그래서   힘든 , 내려 놓아야겠네.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지 조금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신 지가 오래 되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힘든 중에도 생활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인지 미국에서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함이네.                         

당시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아이들을 홍콩도 아닌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 시켰는지... ,  

더구나 아이는 예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 하느라 5년을 공부 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에 이는 나와 아내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느끼게 되었네.  


네들에게  푸념(?)하고 있는 지금, 아내는 아들놈들 보러 미국에 다니러 가있네.

두 아들놈들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만 일을 하느라 지들이 홍콩에 없으니 엄마, 아빠가 다녀 갔으면 좋겠다고 하여 전에는 가게들을 운영하느라 쉽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요즈음은 쉬고 있는 아내를, 아이들 초청에도 혼자 가는 것을 망설이는 같아 반강제로 등을 떠밀어 아이들 덕에 미국에 다니러 갔네.

가면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없는 나에게 미안 했던지 뜬금없이,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 에게는 영어가 쉬울 거라고 하면서, 내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왔다. 이제 천당에 같이 갈수 있겠구나하시며 손을 잡아주시던, 홍콩 생활에서 항시 나에게 고마우셨던 우리 교회 연세 드신 집사님이 선물하여 주신 영한 성경을 챙기며, 아들들 전도하러 간다고  하더 구만.                                                                                        

이제 생각하니 영한 대조성경은 우리 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아들놈들 전도하라고 선물로 주셨던 같네.

자네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아들놈 들이 아직은,                                               

아빠가 갑자기 교회를 다니지? ’                                                          

가끔 아이들이 보고 싶어 전화하면서 어설프게 전도 하려고 하면 나중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
아빠가   갑자기 우리한테 교회를 다니라고 하시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나쁜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교회를 다니라고 하시지?”                

우리 아들놈들, 교회에 대해서 아직은 이렇네.                                                

내가  아직도 믿음적으로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음을 이런 많이 느끼네.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자기를 세우지 않고 봉사자가 필요한 교회의 빈자리를 찾으며 봉사하는, 가끔씩 교회에 대해 삐딱한 나를 혼 내치면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아내를 보면서 옆길로 생각을 못하니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소싯적에는 어림도 없던 상황이네. 감히 어떻게 나를 !


교회를   섬기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이 이렇게 빠른가 싶었었네.                        

토요일이면 주일날 교회 생각에 기분이 좋고....                                       

세상에서 친절하고 선한 사람들이 어디 갔는가 했더니 교회에 있고...               

청년부 여자 성도들을 지켜 보면 며느리 삼고 싶고...                                       

전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내가 겪어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고 또한 그렇게 되더구만...


그런데, 장로님, 장로님!


내가  교회에 처음 나간다고 하니 자네들, 축하와 함께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이구동성으로
"
사람을 보지 말고 교회와 십자가만 바라보라." 충고를 했었지.....                                     

당시에는 무슨 뜻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뜻을 같네.


어느 때 부터인가 그리 빨리 지나가던 일주일이 그리 늦게 가는지?                       

주일 전날 토요일이 즐겁지 않은지                                                    

전에는 3예배 까지 보고 제자 훈련까지 받느라 종일 교회에 있어도 어떻게 시간 가는 줄을 몰랐었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늘근(?) 나중 자이어서 그러한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준비 하여 놓으셨는지 몰라도 우리 내외

교회에 나가면서 우리 교회 성도님 들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았었네

그러다 보니 교회 일을,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시간에 비해 많이 알게 되었었지.          

지금은 그런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지만....


자의 타의 반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성도님들과 교제를 하다 보니 듣지 않아도 교회의  일들에 관해서 듣고, 보아도 일들을 보게 되면서 의문이 들었네.          

하나님을 향한 길은 같은데 힘들게(?) 자기들 만의 길을 없이 만들며 하나님을 향할까?,

교회밖의 세상에서는 내노라 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겸손하여야 같고, 그렇게 가르치고 하는데도... ,

이런저런 생각에 자신은 어떠한지 다시 돌아 보며, 이런 일들이 교회말로 연단 시킨다고 하는 것인가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였네.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 주여, 어린 사슴이 목이 갈하여
시냇물을 찾으며 애를 태우듯                                                                

   나의 갈급한 영은 살아 계신                                                             

   진정 사모함으로 애가 탑니다      

                                                                                              

생각이 많았던 나이인 40여년  교회를 섬기게 되면서 뜨거운 마음에 곡조와 가사의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 즐겨 불렀던 찬송가 인데 지금도 혼자 있을 때나, 길을 걸으며 자주 옛날 곡조로 유일하게 끝까지 

가사를 외우는 찬송가 이네.                                               

나이 들어 하느님을 다시 찾으면서 제일 먼저 찾았던 찬송이었네.                       

그러나 당시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던 찬송가 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찬송가도 오래되면 없어 지는가? 라는 쓸데없는 고민도 생겼었네.


그런데  이상하지?                                                                             

어느 주일날인가 목사님의 말씀이 밖에서 맴돌아, 우리 교회에 비치된 성경이 새로운 성경 으로 바뀌어 호기심에 우연히 펼친 페이지가 찬송가 페이지 이었었네.  신기했네.


가끔  말씀에 목이 하여 답답하면 컴퓨터를 열고 찾아가는 분당 어느 교회의 설교 시간이 있네

같이 아직 믿음이 얕은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씀들이 많이 있지만, 말씀 중에 이런 말씀 제목이 있었네 .                                                                     

 “ 아둘람의 공동체 처럼


성경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한 내가  아둘람의공동체 무엇인지 알겠나?               

그런데 그날 말씀을 들으며 가슴으로 많이 느꼈네.                                             

목사님이 말씀 도중에 분들 하고 인사하자고 하시면서 인사말을 가르켜 주시더군.

"교회에서 너무 설치지 맙시다."

그  교회 성도들도 웃고 나도 많이 웃었네. 너무 공감이 되어서...                     

그러시면서 담임목사인 본인에게도 이런 덕담(?) 해달라고 하시면서 덕담의 내용을 말씀해 주시더군.

"목사님, 너무 나대지 맙시다."

목사가  나댄다는 말이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무언가 의미가 있는 아니 었겠나?
분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교회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나에게 분의 말씀이 의지가 많이 되네.

얼마 우연히 목사님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네.                                           

주일날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한달 전부터 말씀 제목을 놓고 묵상 하신다고....           

그래서 그렇게 우리 같이 설익은 사람들도 듣기에 좋은 말씀이 나오는지...            

목회자라는 직분이 참으로 쉽지만은 않은 같네.


요즈음  주일날 말씀이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많네.                                   

말씀 중에 메시지도 찾지 못하겠고... ,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분의 행함과 말씀 내용이 자꾸 오버랩 되고믿음의 슬럼프(?)인지, 생각이 엉키어 순수하지 못해서 그러한 것인지...?               

아무래도 아직도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성도로서의 수준이 낮아서 그러 하리라고 생각이 드네.


이런 생각도 보네.                                                                    

말씀으로 교회가 우뚝 섰을 ,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나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 수밖에 없는 성도들의 사고와 행위들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지 않을런지 ....    

리고 하느님이 계시는 교회를 세상살이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을 이며 목적을 위해서 자신을 숨긴계산적으로 느껴지는 위선적인 섬김도 없을 이고....


내가  교회에 나간다니 감사한 일이라며 장로, 자네가 미국에서 홍콩으로 보내준 "쪄낸 진빵" 이라는 제목의, 초신자인 저자가 교회에 처음 나가면서 느낌을 적은 책과, 미제라서 그런지 보기 좋고 잘생겨 보이시는 예수님 초상화 그리고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상, 간직하고 있네.

우리내외가 하나님을 섬기게 됨이 감사, 감사하다며 서울의 장로가, 나이 들어 어두운 우리 내외를 배려하면서 보내준 성경책 2, 묵은 초신자인 우리 내외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선물 이었네.                         

전도후 애프터서비스 까지 하시는 장로님,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좋은 친구들이네.


요즈음   번째인지 다시 책을 자기 전에 읽어 보고 있네. 초심으로 돌아가서...          

찐빵 중에서 쪄낸 찐빵이 제일 맛있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네.                   

그러나 요즈음 교회에 대한 마음은 식어버린 찐빵 같은 생각이 드네.


이 보시게, 장로님들,


아직  믿음이 돈독하지 못한, 자네들이 전도한 날라리(?) 서리 집사가 식어버린 찐빵이라고 표현 한다고 해서 우려 할지 모르겠으나 걱정들 마시게.                                     

너무도 감사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화를 내시면 무섭게 내실 같은 하나님이 계신데 어찌 믿음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며 샛길로 빠질 있겠는가?                                                               

이제 하나님 무서워서 도망도 가네.

지금  교회에 대해서 조금은 삐딱하게 생각하는 시간도 하나님께 회개하며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섬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는 두려움이네.   

                  

가끔은 교회 밖의 세상에서 일어남직한 일들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들으며 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때가 있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 같네.                                           

그래서 그런지 교회를 향한 생각들이 각양각색인 같기도 하고...,  참으로 처신 하기가 세상보다 힘든 같네.

나이들어 교회에 나오면서 받은 느낌은 교회 속에 세상이 있는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교회도 세상 속에 있는 이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네.                     

그것도 아주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느낌은 참으로 하나님께서는이것저것 구별 하지 않으시고 많이 감싸 주신다는 것을...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네.                            

하나님이 계시기에 편안한 성전을 만들라고 주시는 직분들이 아니겠는가?

장로가  성도들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직분에 대한 의무를 포기한 보이고, 주관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계산을 보니 실속도 없고 세상적인 이익도 없고 해서인지, 그래서 주어진 본분을 다하지 않는 같이 보이고 , 그러다 보니  교회 일에서 소리가나게 되며, 한편으로는 성도들이 보기에 장로가 목회자의 눈치나 보는 같고, 장로가 반대하면 목사 발목 잡는다고 소문 내고, 목회자는 기름 부은 하나님의 종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 하면서  목회자를 독점(?) 하는 것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지는 것으로 아는지 목사님, 우리목사님하며 같이 설익은 사람이 보면 목회자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하고 다른 성도들이 너무 지나치게 받들고, 그래서 같이 어설픈 믿음의 초신자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갈리 하는,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교회에 대한 생각들과 성도 마다 각각인 믿음을 보고 들으며 아직도 세상적으로 가까운 설익은 찐빵인지라 가끔은 무슨 의미에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는지 회의에 때가 있네.


목회자와 가까워 지면 하나님과도 가까워 지고 (?) 받는 것으로 아는지 목회자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는, 그래서 경험 많지 않은 목회자를 착각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분과 그런 분이 시무하는 교회까지도 되레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네.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네.                            

가끔 말씀 중에 언급하는 'Diaspora'에  대해서 말뿐이아닌 한번쯤 이라도 진지 하고 진실   고민해 본적이 있느냐고...

어느 집사님의  말이 생각나네.                                                             

교회는   하나님의 안이기에, 올곧지 않은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의 생각과 행동에 참아주며, 참아 준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기회를 주는 아니겠냐고....,
그들의 위선적인 섬김이 무엇을 향하는지 세상적인 계산 속이 보이는데, 이러한 성도들의 생각을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한국기업의 주재원들이 다수인 홍콩 교민사회의 특성상, 교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공동 의회가 열릴 때면, 주재원의 임기가 끝나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떠날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듯한, 교회 운영에 관련하여 무슨 목적이 있는듯한  일부 성도들의 강요 (?) 평소에는 나오지 않던 교회의 투표할 때에만 얼굴을 보이고 , 그리고  모처럼 출석한 교회의 중요한 사안 대하여 결정할 누가 정하여 주는 대로 투표하며 주관 없이 휩쓸리는 듯한 일부 성도들의 모습에 걱정하며, 그네들은  3 ~4 주재원 임기를 마치면 홍콩을 떠나 가지만, 한편 떠나 못하고 교회를 섬길 수밖에 없는 성도들은, 그저 때가 되면 속절없이 져버리는낙엽쯤으로 생각하는지 그들의 단순 생각들이 야속하게 느껴질때가 있네.


이 보시게, 장로님들!


교회라는 곳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격자들만 모인 곳이 아닌, 본디 하나님이 보시기에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당신께 의지하며 구원 받자고 모이는 곳이 아닌가?                         

중에 하나가 자신이고...

그렇게  연약한 사람들을 목자라는 사람들이 어느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지 않고 감싸 안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옳은 믿음을 향하여 인도할 밝고 따뜻한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소견이네.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내가 느끼는 교회라는 곳은, 어쩌면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아닌 너무도 이기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집단(?) 같이 느껴질 때가 있네.            

과연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인지....

그렇지만   한편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 믿음에 대해 더욱 연단되어 지는 아니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어쩌면   ‘ 홀로 크리스챤’  교회를 섬기는 방법으로, 생각하면 영리한 생각일 듯도 하네.


그리고 초신자인 내가 제자훈련을 받는다고 하니 자네들 조금은 의아 스러웠겠지만 그래도 자네들은 축하를 해 주었었지.

감히 우리같은 평신도의 제자훈련에 대해서 초신자의 생각을 언급을 해 보겠네.

제자훈련을 열정적으로 행하셨던,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옥한흠목사님 같으신 분은 어쩌면 순수한 열정으로 제자훈련을 행 하셨을것 이네.


그렇지만 감히 표현하자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행하는 제자훈련은 지양해야 할것으로 생각되네.

나는 주위의 강권에 의해서 받게 되었지만 그래도 주위의 격려속에 자격(?)은 안되었지만 정말 열심히 제자훈련 이라는것을 받아 볼려고 다짐을 했었네.

그러나 훈련을 받는 시간들이 지나며 제자훈련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되었네.

그저 주어진 교재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수준 이었고 가끔씩 언급되는 교회의 내부 사정, 거기에 빠질수 없는 장로들에 대한 목회자의 판단들, 결국은 내 주관적인 생각이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목회자의 내편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판단되어 수료를 앞두고 제자훈련을 그만 두었었네.

그래도 나중에 수료증은 주더구만.


하나님은 왜 이리 초신자를 힘들게 하시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복잡하게 엉클어 버렸었네.

그렇지만 어떠 하겠는가?

이 또한 연단 하심으로 받아 들였었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대한 외나무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초신자를 여러 방법으로 연단하신다고 생각 하였었네.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세상적으로  참으로 성공한 분들이 교회 안에서 낮추며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한없이 낮출 있는 믿음에 고개 숙이며 부러워하고, 한편으로는 교회 에서도 과연 저렇게 살아 갈까 정도로 너무도 가식적(?) 일부 성도들에 연민하면서 어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심 인지 굳이 나는 구분 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구분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렇게 편을 가르는 자신을 회개하면서 기도하고 있네.  

내가 무슨 심사위원이라고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서 무엇을 판단하고 평가 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도간에 서로 부족함을 일깨워 주고 소통하며 하느님을 향하는, 하느님께서 가르켜 주신 오직 길을 바라보며 나아갈 이것이 진정 믿음의 공동체가 아닌가 싶네.


오랜믿음 생활 동안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보고 겪으신 교회의 원로라는 분들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나이 들어 욕먹기 싫다고 팔짱만 끼고 관조(?)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교회를 섬기면서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을 내려 놓은 객관적인 판단으로 꾸짖고 격려하며 교회를 위하여 나아가는 모습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실런지...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주일날  나는 지금 교회 입구에서 2년차  안내 봉사를 하고 있네.                                            

안내 봉사직이 참으로 은혜스러운 봉사인 같네.    

주일날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하러 오시는 성도님들을 교회에서 제일 먼저 만나지 않는가?                       

주일날 예배하러 오시면서 화낸 얼굴로 오시는 성도님들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네.          

밝게  웃으시며 인사하시니 또한 밝게 웃을 수밖에..                                         

참으로 은혜스러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안내 봉사도 내려 놓으려고 하네.                                        

어느 부터인가 즐거운 마음 보다는 예배 보러 오시는 일부 성도님들에 대해서 내가 만든  잣대로  성도들을 판단 하는 듯한  나를 보면서 많이 놀랐네.
그리고 회개했네.                                                                            

이러한  잣대를 가지는 자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 믿음과 좁은 편견 이겠지만....        

많이 고민 했네.                                                                               

봉사하는 일이고 갑자기 내가 그만 두면 나로 인해서 무더위에 다른 분이 수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러나  어찌 하겠는가?   마음이 힘든데...                                                       

즐겁지 않은 봉사는 실수도 있기에 말일세.                                            

이제 발자욱 뒤에서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네.


이 보시게 장로님, 장로님,


어쩌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성도인 같네.                                                

믿음적으로 답답할 아무런 부담 없이 교회에 관해 이렇게 투정을 부릴 있는 듬직한 장로님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 한지                                          

그러한 장로님들을 생각하면서 감히 내가 어디로 새어 나가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진즉 읽으시고 꼼짝 못하게 자네들을 붙여 주신 같으니 또한 그래도 감사함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투정을 부리고 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개운 해야 되는데 웬지 개운치가 않네. 교만한 마음, 회개하면서 기도 해야겠네.                                               

나는 이렇게 회개할 일이 많은 인지.....,                                              

 그려, 나는 바보야그려, 나는 바보야”   큰소리로 복창 해야겠네.               


이제 오랜만에, 가끔 답답할   찾아가는 세인트루이스소망교회에,  컴퓨터를 열고 우리 친구 목사님을 만나러 가야겠네.                                                                  

자네들도 찾아 오시게.                                                                      

전라도 사투리로 잔잔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우리 친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겠네.


가능하면  언급을 하지 않아야 되는 교회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다 보니 장로님들로 부터 혼날 일이 걱정되네.                                                                     

초신자의  믿음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게.                

교회에서는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그나 저나 믿음 생활에서 나의 멘토이신 장로님들께서  이러시며 호통 치실 같네.


   어이 집사, 정신 차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