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글


  홍콩에서 37년여 동안 이민생활을 하고 2017년 미국으로 이주한후 컴퓨터에 저장 되어있던 오래된 File을 정리하다, 2008 10 28일부터 31일까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개최하였던카자흐스탄 선교사 대회에 참석하셨던 카자흐스탄 지역의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분들 약 200여명을 후원하고 돌아왔던 홍콩한인교회 38(홍콩한인교회 34한국측 강사 4)의 성도들로 이루어 진 섬김이 들의 일원으로하나님을 늦게 섬기게 되며 당시 왕(?)초신자 이었던 본인이 홍콩을 출발하여 비행시간 8시간의 카자흐스탄 알마티 56일 동안 방문하여 선교사대회에 참석하셨던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을 섬기고 홍콩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이종교국의 오지에서 사명감 만으로 애쓰시는 선교사님들을섬기고 왔다는 기쁨 보다는 믿음의 백짓장 같았던 초신자의 가슴을 무언가 무겁게 짓 눌렀던 무거움의 진한 여운에같이 참여하고 싶었지만 동행하지 못했던 다른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홍콩한인교회의 홈페이지에 써 내려갔던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많이 부족한 글이고 저 개인의 주관적인 글이지만 미국생활에서 이민교회를 섬기며 혹시 참고가 되실지 몰라서 본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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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의 봄

 

 

차가운 날씨, 겨울 초입의 그곳,

성도들의 뜨거움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계절을 바꾸었습니다.

 

춥다고들 하나 낯선땅 카자흐스탄, 겨울 초입인 그곳의 날씨가 궁금 하였습니다.

내복을 준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선교팀의 안내에, 얼마나 추울까 하는 궁금함 이었지만 그 분들이 느끼는 오지 선교의 추위 만큼 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만 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5 6일동안 그곳은 정녕 봄 이었습니다.

 

초신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주위에서 들리는 평신도들의 단기선교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이번 카자흐스탄 단기선교는 나 하고는 별개로 생각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할일이 많은 것 같은데 남의 일(?)에 까지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초신자의 생각으로는 타국에 까지 가서 선교 후원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성가대장을 맡고있는 김 집사로 부터 보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요즈음 제 상황에 대한 위로 차 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만나서 첫 대화가 카자흐스탄 단기 선교에 관한 이야기 이었습니다.

다른 얘깃거리도 많았을 터 인데 왜 그 얘기를 제가 꺼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끝에 제가 같이 가서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하시기 어려운 일들이 보였습니다.

 

김집사와 헤어져 집에 돌아 오면서 부터 갈등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국내의 한 식품박람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상태 이었습니다.

주최측으로부터 항공료와 박람회 기간 체재비를 지원 받는 초청 이었습니다.

마침 국내에서 할 일도 있었고 해서 초청을 수락한 상태 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정을 확인하여 보니 양쪽의 행사 날짜가 겹치는 상황 이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한쪽은 대우(?)를 받으러 가는 것 이고 한쪽은 고생(?)을 하러 가는 것 이었습니다.

섬기는 봉사를 한다는 것이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 되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순간 순간 마음이 바뀌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 가야 된다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짓 누르기 시작 하였습니다.

어떤 강한 힘이 제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감히 초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느꼈다면 주제 넘었다고 하시겠지만 제 마음의 움직임은 그 곳에 꼭 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한편 초신자가 무엇을 안다고 감히 선교에 동참하려 하느냐며 마음의 꾸짖음도 있었습니다.

 

양쪽 일정을 다시 확인하여 보니 한국 쪽의 일정을 줄이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일정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저의 소리가 마음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한 순간,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시 흔들리기 전에 동참을 선교팀에 알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고귀하신 어느 분이 김집사를 제게 보내신 것 같았습니다.

한편 반면에 초신자가 주제넘게…..”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그런 소리들 무시하기로 하였습니다. ‘

 

지금까지 내 뜻, 내 고집대로 살아온 삶, 이제부터 어느 분의 바램대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성격 급하고 지독히도 아내 말을 듣지 않았던 어떤 남자가 사업이 기울면서 일상이 힘이 들어 잠시 뒤돌아 보니, 주위의 그 많던 사람들이 그 남자의 곁을 떠나갈 때에도 묵묵히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 주고 있던 한 사람그 못난 사내의 아내인 괜찮게 생긴 한 여인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자랑(?)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도대체 하나님과는 가깝지 않을 것 같은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한 서울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두 친구 장로님들에게 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고 무엇이 그리 감사한 지는 모르겠지만 감사! 감사! 하며 너무 감사하다는 두 장로님의 이구동성 무한(?)한 축복 이었습니다.

 

그 다음 제2기 제자반 동기(?)들에게 , 카자흐스탄에 가노라 !”..

늙은 오야붕(?)이 제자반 2기 대표로 가니 뜨거운 기도와 임무를 마치고 돌아 오면 성대한 환영 만찬을 준비 하라는 엄포와 함께 선포를 하였습니다.

 

세상 연륜에 관계없이 이 늙은 오야붕에게 잘 대드는 강원일집사의 오야붕 성격이 걱정 된다.”는 충고에 나 자신을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내세울 것 도 없는 내가 더 낮추면 되고 만에 하나 이종교국인 그곳에서 좋지 않은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보내고 내가 그곳에 남을 것 이다.”라고 안심을 시켰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려한 그곳의 안전에 대비하여 마침 인접국인 중국 북경의 대한민국대사관에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며 국방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배에게 단기선교로 카자흐스탄에 간다고 하니 아니 형님이 언제부터 교회에 댕기셔?”라며 조금은 의아스럽게 질문을 하면서 아무튼 아무 걱정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하시라.”는 든든한 후배의 격려 이었습니다.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 보러 미국 갈 때 다음으로 나에게는 긴 여정 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잠을 잘 못 이루는 성격 탓에 거의 비몽사몽간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 하였지만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대충 여장을 풀고 선교사님들 영접 준비를 하였습니다.

 

떠나기 전, 하나님을 섬기면서 교회 일에 서툰 초신자인 나에게 교회 생활에 객관적인 판단으로 도움을 많이 주었던 물류팀인 우리 팀의 팀장인 정혜순집사의 그분들 중에는 오지 선교의 아픔이 있는 분도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의 마음 가짐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놀랐습니다.

선교사님들 영접 준비를 하면서 언제 이런 준비까지 하였나 하는 저희 성도님들의 준비성에 놀라움 이었습니다.

1조의 환영합니다.” 2축복합니다.” 3사랑합니다.”라고 쓰인 피켓들을 들고 우리로서는 반갑고 진심 어린 환영 이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시며 우리들의 찬양과 율동에 뜨악해 하시던 그 분들의 표정에 왜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제금융 도시인 홍콩에서 미국의 유명한 국제투자금융회사의 아시아 총괄 사장으로 재직하는 홍 집사, 일본 노무라증권 부사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신 집사, 국제 Head hunter로 홍콩에서 날리는 김 집사등 세상일에 다 성공하신 남자성도들로 이루어진 3조 환영팀의, 한국 출장중에 가족 선물을 사러 들리면서 보았던 한국의 백화점 주차요원들의 율동을 흉내낸 나이든 남자들의 율동에, 다가 오시면서 벌써 눈가에 이슬이 맺히신 어느 선교사 사모님의 감동입니다.”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울컥 하였습니다.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 하였습니다.

딱히 초신자로서 특별한 장기가 없고 팀원중에 남자의 힘이 필요한 궂은일을 할만한(?) 남자 집사들이 없는것 같아 어느 한국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는 홍반장이 되기로 하니 신바람이 났습니다.

주님 앞에서 나이가 무슨 필요 있으며 세상일의 직책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저희 성도님 들을 보면서 큰 울림이었습니다.

 

둘쨋 날,

나만의 느낌 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들의 표정이 밝아 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합시다 하는 지시도 없었습니다.

잘 돌아가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멈추지 않고 수 많은 리허설을 한 것처럼 내 세우지 않고 맡은 일에 열심이신 성도님 들을 보면서 홍콩한인교회 성도님들 믿음의 저력을 보았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한시도 쉬지 않는 연세 드신 권사님들, 연약해 보이는 여 집사님들을 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영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초신자 이기에 그러하신 성도님 들을 보면서 어느 무엇이 이렇게 힘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만들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강사님들의 특강과 예배,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어지는 기도 속에 더욱 우시는 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 같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강사님의 말씀처럼 나는 누구인가? 왜 이곳에 있는가?”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였던 시간들 이었습니다.

수줍어 하시며 선뜻 다가서지 못하시는 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새우깡'을 마음대로 먹을수 있어서…”

이런 감사의 말씀을 우리에게 수줍게 말씀하여 주시는 사모님들, 그분들에게 무어라 더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외국이라도 웬만한 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새우깡' 조차도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넉넉히 먹일수 없는 열악한 선교지에서 오직 사명감만으로 견디어 나가시는 사모님들의 인사를 웬지 모를 너무 미안함에 그저 받을수 없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마음속 깊이 울어 본적이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 분들과 같이 기도 하면서…, 그리고 차가운 알마티의 눈 덮인 산들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통곡하면서 통성기도하는 중고등부 MK들의 기도를 들으며, 무슨 맺힘이 저리 많으며 어린 나이에 무슨 한이 저리 맺혀 절규 하듯 통성기도하는 아직 세상적으로 어린 선교사님의 자녀들을 보며 초신자 다운 생각에 같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에서 선교사님들, 그 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것 3달 동안 하는 것 이지요?”

선생님, 내년에 또 오시는 것 이지요?”

초롱초롱하고 순박한 눈빛으로 유초등부 MK들이 유초등부 선생님들 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는 말을 전하면서 눈물이 글썽하신 우리 유초등부 선생님들의 말씀을 전해 들으며 또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 분들을 섬길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초신자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평신도들이 직접 선교 한다고 하는 것 보다 척박한 곳에서 이방 선교 하시는 그 분들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선교가 아니겠냐고

 

잘 때도 메고 자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무겁게 보이는 베낭을 매고 다니며 무엇이 그리 좋아서 싱글벙글 웃고 다니며 즐거워 하는 남 집사의 모습에서, 내가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한들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베낭을 풀며 도와 달라고 하여 보니 베낭속에 US 달러가 가득 하였습니다.

놀라서 물어 보니 먼 곳에서 오신 선교사님 들께 드릴 여비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기석집사의 사비로 가족별로 몇백불씩의 여비를 나눠 드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선박사업으로 사업이 잘 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아낌없이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사비를 내놓는 남 집사를 보며 큰 도전 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정이 끝나는 저녁 10, 11까지 먼지 쌓인 낡은 카페트 위에서 아이들과 같이 하면서 잠자리에 들 때쯤 해서는 콧속이 새까맣더라는 유초등부 선생님들,

 

유치부에도 들지 못한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의 엄마가 되어 하루 종일 날도 추운데 혹시 감기라도 들세라 아기들이 덮다고 느끼는 것 같으면 겉옷을 벗기어 가슴에 안고 본인이 발을 다쳤음에도 내색 없이 아기들을 돌보아 주신 남순우 집사님,

 

생각이 많은 사춘기 중고등부 MK들을 밝은 모습으로 변화 시켜 나가시는 중고등부 선생님들 ,

 

행여 선교사님들의 간식이 떨어 질세라 선교사님들 간식으로 컵라면만 드시면 안된다며 재료가 열악함 에도 메뉴를 바꿔가며 간식을 준비 하시는 연세가 많으신 섬김팀 권사님들,

 

아이들에게 이 주스가 맛 있을까 저 주스가 맛있을까 빵에 바를 잼을 고르면서도 이 맛을 좋아할까 저 맛을 좋아할까 팀장 뒤 쫒아 다니는 식품의 전문가(?)인 내가 짜증날 정도로 꼼꼼하게 아이들 위주로 식품을 챙기는 우리 팀장 정혜순 집사님,

 

얼마나 좋은 그림을 만들려고 하는지 하루 종일 이곳 저곳 팀들의 현장을 찾아 다니며 촬영을 하고 날밤 새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영상을 편집하는 영상팀의 이희숙 집사님, 그리고 방송국의 이름 날리던 PD로 재직 하시다 선교의 사명을 띄고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전업(?) 하신 일명 조피디 선교사님 내외,

 

성가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영상팀에 소속되어 편집하느라 얼굴이 퉁퉁 부은 김종국 성가대장님, 제발 눈 좀 붙이라는 홍반장의 협박(?)에도 사람 좋은 웃음 실실 웃으며 사진 제작에, 선교사님들에게 나눠 드릴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의 숙소이며 대회장인 따우사말 산장의 일일 신문 제작에 한시도 눈을 붙이지 않는 것 같은 강동혁 전도사님,

 

이 바쁜 와중에 언제 무슨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에 홍콩의 국제금융 전문가로 투자 유치 때문에 주특기가 되어버린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 제자 훈련 전후를 간증하며 선교사님 내외분들의 배꼽을 빼어버린 신동기 집사님,

 

항시 조용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청산유수 같은 언변으로 간증을 하며 그 분들을 울리고 웃겨 홍반장을 멍하게 만드신 남현주집사님, 그리고 연세가 있으심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간증을 하시어 그 분들에게 큰 감동을 주신 전경선 권사님,

 

서울에서 사업 하기에도 바쁠 터인데 한국으로 귀임 하면서 홍콩한인교회를 떠나셨던, 무슨 큰 볼일이 있다고 내외간에 한국에서 날라와 기꺼이 섬김팀에 동참하여 홍반장과 찌그럭 쩌그럭 하면서 홍반장이 명명한 알마티 따우사말 카페(?)의 지배인을 맡아준 유범식 집사님,그리고 유집사님의 부인 이시며 생글생글 웃으시며 카페(?)를 찾아주신 선교사님들을 기분 좋게 대접하여 주신 역시 홍반장이 임명한 따우사말 카페의 이마담, 이선영권사님,

 

흰머리에 믿음직한 체격으로 말없이 이곳 저곳 빈 곳을 채우시며 후원하여 주신 서울에서 오신 방한동 권사님 내외분, 마지막 날 모두를 울렸던 하나됨의 시간을 총 기획,연출한 안해옥 집사님,

 

그리고 울고 싶어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따랐던 아빠 엄마의 삶에 갈등을 느끼며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을 것 같은 중고등부MK들의 마음을 열어 통곡과 기도로 답답했던 마음들을 쏟아내게 만들어 본연의 밝은 모습으로 거듭 나게 하신 서울에서 기꺼이 참석하여 주신 자칭 카자흐스탄의 밤안개 탱크 홍민기 목사님,

 

눈 덮인 알마티의 하얀 산을 보며 생각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분들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하겠는가 하고

세상이 항시 지금 같은 우리 성도님 들의 모습처럼 밝았으면 좋겠다고

 

알마티의 하늘은 잿빛 이었습니다.

그 잿빛 하늘을 보며 기도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저 분들이 이곳을 떠나실 때 에는 밝은 햇살에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고

사역지에 돌아 가셔서도 마음속엔 항상 따스한 봄날의 햇살로 가득 담아 주시라고

우리도 돌아가서 항시 따뜻한 햇살이 비추이는 따뜻한 교회로 섬길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 하였습니다.

 

하나됨,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고귀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계시는 우리 따뜻하고 귀한 홍콩한인교회, 易地思之 하면서 그 분이 편히 계실 수 있도록 , 카자흐스탄에서 보여준 밝은 표정 같이 서로를 위하고 생각을 공유하며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교회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 오는 길,

피곤함에도 밝은 표정으로 끝까지 서로를 위하며 쉴새 없이 재잘(?) 거리시는 우리의 젊은 여 집사님들의 모습에서 귀한 섬김의 자세를 보았습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그 귀한 분들의 잔영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카자흐스탄의 우리의 귀한 선교사님들, 세상의 삶과 비교하면 괴리감이 들 수 있음에도 오지에서 순종 하시며 선교사님들을 지탱하여 주시는, 어떻게 생각하면 선교사님들 보다 더 귀하신 사모님들, 아빠 엄마의 삶에 순종하는 더욱 더 귀한 아이들, 존귀한 보석 입니다.

 

기도 합니다.

카자흐스탄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의 마음속은 항시 따스한 봄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지금은 그곳, 카자흐스탄은 스산한 겨울의 초입이지만 그 분들이 머물다 가신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아마 따뜻한 봄 일 것 입니다.

 

 

행복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어서


행복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이 이렇게 따뜻한 것임을 알고

 

행복 하였습니다.

선교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잃지 않으셨던 여러분들의 소박한 미소를 보며

 

행복 하였습니다.

왕초신자에게 어느 보석 보다도 더 존귀한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행복 하였습니다.

여러분들께 눈물을 보이지 않도록 어두운 새벽에 떠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배려 하심에

 

행복 하였습니다.

항시 따뜻한 교회 이지만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섬기는 홍콩한인교회 형제, 자매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 결국 쏟았습니다.

이른 새벽, 공항으로 떠나는 버스 속에서 저희들을 향한 자라공동체 젊은 형제,자매들의 축복 찬양에

 

돌아와서 알았습니다.

저희 섬김이들,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었음은 홍콩한인교회 성도님 들의 뜨거운 기도와 역시 초신자인 제 아내의 어설펐겠지만 뜨거운 기도 덕분 이었다는 것을

 

늙은 오야붕(?)이 자칭 2기 제자반 대표로 여러분들을 섬기러 갔다 하여 잘 안 나가던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새벽 제단에서 뜨겁게 기도해 준 2기 제자반의 동창 곽방삼 집사, 강원일 집사, 진병오 집사의 뜨거운 기도 덕분 이었음을

 

행복 하였습니다.

저희에게 고맙다고 수줍게 표현하여 주시던 여러분들의 소박하고 고귀하신 눈빛에

 

건강 하십시오.

올 겨울은 참으로 따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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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본문을 보시고 당시 선교사대회에 참가 하셨던 선교사님들께서

댓글로 적어 놓은 글 입니다.)

 

-영적 회복에 감사하며-

 

마치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꿈을..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새벽 기차에 내려서 땅을 밟는 순간 꿈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 땅에 다시 꼿꼿이 서서 이 어둠을 뚫고 나가라는 그 분의 사랑 하심이 여러분들을 통해 부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저의 내면은 변했습니다.

마치 우리를 토해 내는 것 같은 그 완강함에 지쳐가던 제게 그 섬김의 자리에 가기전부터 계속적인 힘과 감사와 설명할수 없는 꿈틀 거림을 느꼈었는

데 그것이 여러분들의 중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상황은 바닥 이어서 기쁨을 누릴 아무것도 없었었는데 저의 마음은 형용할수 없는 기쁨으로 견디기 어려울 지경 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안에 하나인 여러분의 사랑 어린 기도가 저에게 부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전율이란

 

짧은 기간의 만남 이었지만 벌써 보고 싶습니다.

이곳으로 이동한 후 이동한 것에 대해 늘 분노하며 살던 아들에게 좋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엄마의 말이 아이에게 잔인한 말 이라는 것도 이 번에 알았습니다.

내게 입혀진 나도 모르는 믿음 이라는, 거룩 이라는 가식의 옷에 속지 않고

아무것도 칠해 놓지 않은 내게 아버지가 마음대로 그릴 수 있도록 벗을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신 목사님 감사 합니다.

 

정말 이 땅에 주님의 권능이 이루어져야 함을 절감 합니다.

능력 없음에 절망 하던 저에게 힘을 주신 말씀들에 힘을 얻어 다시 기도하며 손을 얹으려 합니다.

제자도 만이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음을 확인 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 길을 가야 함도

오직 하늘만 보며 지금의 모든 여건과 환경을 돌아 보지 않고 만남적도 없는 우리에게 지체라는 이유 하나로 아버지 나라 확장이란 그 목표 하나에 헌신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사랑과 감사로

카자흐스탄에서  강사라, 송 안드레

 

 

- 감사가 늦었습니다. –

 

지난 주간 꿈 같은 시간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분주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러 이제야 감사 편지를 드립니다.

저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있는 김창식 선교사 입니다.

(예, 예성이 아빠 이기도 하구요.)

 

인사치레 같지만

저는 이런 인사치레 같은 말은 잘 안 하는데

그래도 이번엔 인사치레 라고 느끼시더라도 꼭 해야 하겠기에 이렇게 보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존재가 귀하다고 느껴졌던 시간 이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로 귀한 선교사님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10분 후면 우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되고

세상에 버려진 돌과 같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불려지는 귀한 선교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오신 여러분들이 보신 것 같이 언젠가부터 선교사들의 표정이 무표정하고 무감각 해 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 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카자흐스탄의 땅에 들어 갔을 때 우리도 이 땅의 사람들 에게서 그러한 얼굴을 보았었습니다.

웃음이 없는 얼굴들, 슬픈지 기쁜지 알수 없는 무표정들, 뭔가 경계 하는 듯 하고 남이 베푸는 친절을 기분 좋게 받지 못하는

 

그런데 우리가 봤던 그 얼굴들을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짜 귀한 선교사님으로 대접해 주신 여러분의 섬김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존귀한 자로 생각하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에게 까지도

그래서감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이 땅의 아픔을 짊어지고 기도하며 나가야 하는 사람들 입니다. 이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 땅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치유해 나갈 수 있도록

그렇기에 우리의 표정에서 이 땅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얼굴이 끊임없이 보여질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김창식 선교사 드림

 

 

    - 사랑의 섬김에 감사 드립니다. –

 

이번 카자흐스탄 선교사대회에 참석했던 사랑에 빚진 자 입니다.

홍콩한인교회에서 섬겨 주신다는 말을 듣고 대체 어떤 교회일까 라는 기대와 설레임 속에 참석했던 34일의 시간은 저희 가족에게는 아버지의 위로와 격려, 또한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시간 이었습니다.

 

셋째를 갑작스런 유산으로 잃은 슬픔과 재정적인 어려움, 사역에 대한 막막함등 넘어야 될 산도 많고, 여러 힘든 상황 속에서 이번 대회는 저희 가정에게는 감동 이었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겸손함으로,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온몸과 마음으로 저희를 섬겨 주시는 목사님과 귀한 성도님 들의 사랑에 많이 울던 시간 이었습니다.

저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 하겠구나 하는걸 경험하는 시간 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 땅에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살겠습니다.

교회의 귀한 사랑과 섬김을 본 받으며 이 땅을 겸손함으로 사랑하며 섬기겠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랑에 빚진 자

 

 

 

     - 카자흐스탄에 와 주셔서 감사해요 ~~ –

 

안녕하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선교사 입니다.

여러분의 섬김으로.. 많이 회복하고.. 정신 차렸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숨 쉴수 있게 해 주셔서

이제 조금 이나마.. 살 것 같아서.. 감사 합니다.

하나님의 더 큰 복이 홍콩한인교회에 있길.. 기도 할께요~~

 

모두들잘 가셨는지???

몸살 나셨죠???

가슴 깊이 깊이 감사가 넘칩니다

 

행복 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